천동설부터 만유인력까지, 태양중심설은 어떻게 성립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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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동설부터 만유인력까지, 태양중심설은 어떻게 성립된 걸까

최주혁기자 기사등록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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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중심설에서 태양중심설로 넘어가는 과도기가 되었던 16~17세기에는 기존에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들이 세워놓은 지구중심설과 형이상학, 그리고 새롭게 발견되는 우주론 사이의 대립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런 논쟁의 포문을 연 것은 코페르니쿠스로 정작 그는 위의 대립에 대한 일말의 사유 없이 단순히 과학적 사실 증명에만 관심을 가졌다. 그는 수학자 출신답게 단순성을 추구했고 그 결과 기존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학파를 공유했던 프롤레마이오스의 지구 중심 우주모형 대비 훨씬 단순한 형태의 태양 중심 우주모형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수학적 통찰과는 별개로 이는 기존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운 천상과 지상이라는 형이상학과 완전히 대립하는 내용이었기에 중세 주류였던 종교철학자들에 의해 그의 의견이 철저히 배척되었다.

상기 과정을 지켜봐 온 후대 태양중심설 지지자들은 두 갈래로 나뉘었는데 형이상학을 존중하면서도 코페르니쿠스를 지지하는 학파와 철저히 형이상학을 부정하려는 학파로 나뉘게 되었다.

전자의 대표주자는 브라헤로 그는 태양과 같은 항성들은 지구 주위를 공전하고 나머지 행성들은 태양을 공전하는 복합적인 우주모형을 제시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두 천체 과학자들에 의해 이 주장은 부정당했다.

두 과학자는 케플러와 뉴턴이다. 케플러와 뉴턴은 단순한 수학 법칙이 자연 전체에 대해 지배권을 가지고, 지상에서 적용되는 법칙이 천상에서도 똑같이 적용됨을 주장했다. 지상과 천상의 철저한 이분법을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과는 완전히 대립하는 것이다.

케플러는 종교적 요소를 배제한 채 기하학을 근거로 원 궤도가 공전의 틀이 되는 우주모형을 제시했다. 뉴턴은 이 우주모형을 기반으로 행성 간의 관계를 그가 만유인력을 통해 수리과학적으로 증명해냈다.

뉴턴은 크기는 없고 질량이 있는 이론상의 물체인 질점을 제시했고 질점 사이의 적용되는 힘을 만유인력이라 칭했다. 균일하고 거리가 일정한 두 구 사이의 만유인력은 각 구의 질점들 사이에 작용하는 만유인력의 크기 합과 같다는 점을 이용해 뉴턴은 태양과 지구 사이에 작용하는 만유인력의 크기는 같으며 흔히 소개되는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으로 이를 연역했다.

칼 세이건의 저서 「코스모스」에 따르면 천문학 연구는 6세기 피타고라스에서도 발견된다, 1000년이 넘는 동안 이루어진 수많은 연구들이 모여 비로소 현대의 지구중심설이 완성된 것이다. 저자의 말을 빌려보자면 숭고한 과학의 전환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인류사에서 현대인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MZ의 과학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