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개혁 칼럼] 맛있는 음식은 간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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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개혁 칼럼] 맛있는 음식은 간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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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근태 칼럼니스트. 한스컨설팅 대표. 미국 애크런대 공학박사. 대우자동차 최연소 이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선거철이 돌아오면 여기저기서 후보들이 유세를 한다. 하지만 난 거의 듣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뉴스를 보다 할수 없이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내용이 별로 없고 진정성도 떨어져 보이는데 그들은 시종일관 목소리를 높인다. 내용도 없는데 왜 저렇게 소리를 높일까? 저런 연설을 듣고 표를 주는 사람이 있을까? 선거 유세라서 저러는 걸까, 아니면 평소에도 목소리를 높이는 걸까?

난 쓸데없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특히 차분하게 얘기해도 되는 내용과 상황임에도 목소리를 높일 때는 더 그렇다. 말의 알맹이가 없으니, 설득력이 떨어지니 저러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강사 혼자 처음부터 흥분하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밑도 끝도 없이 어떻게 저리 혼자 흥분할 수 있는지 신기했다. 마음은 불편했다. 내용도 없고 재미도 없는데, 강사는 시종일관 자신만만했고 흥분했다. 강사가 그럴수록 강의장 분위기는 점점 냉랭해졌다. 청중들의 반응이 차갑자 강사는 끝내주지 않아요?”,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재미있지요?” 하며 동의를 이끌어 내려 애썼다. 청중들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거나 동의를 표시했다. 강사가 흥분할수록 청중은 차가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 강의를 들으며 알았고, 나는 또 배웠다. 다중 앞에서 혼자 흥분하면 안 된다.

복면가왕 같은 블라인드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복면을 써서인지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선입견 없이 노래를 부르고 즐긴다. 정말 우리나라에는 노래 잘하는 사람이 많다. 프로그램이 몇 년째 계속돼 밑천이 떨어질 때도 된 것 같은데, 대단한 가수들이 끝도 없이 계속 등장한다. 가수들의 노래도 좋지만 거기 나온 게스트들의 반응도 볼거리이다. 근데 너무 심하게 감탄하는 모습은 어쩐지 작위적으로 보인다. 물론 텔레비전을 통해 보는 것은 현장에서 실제 보는 것과는 감흥이 다르고, 그 감흥이 표현되는 정도와 방식도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매번 저렇게 감탄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것도 입을 쩍 벌리면서까지 놀라는 것은 남들 눈을 의식해 실제보다 더 크게 리액션을 하는 것일 게다.

난 감정이 과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호들갑, 엄살, 흥분, 침소봉대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감정은 절제할 때 더 빛이 난다. 조용필의 얘기가 떠오른다. 조용필이 가수 활동 25주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일간지 기자와 대담을 했다. 이 대담에서 조용필은 자신의 음악 활동 25년이 후회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왜 그런 말을 하냐고 기자가 묻자, 곡 스타일은 둘째로 치고 노래할 때 감정을 지나치게 발산한 것이 후회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요즘은 노래할 때 감정을 굉장히 절제합니다. 영원히 들을 수 있는 노래는 감정을 누르고 눌러 내면에서 우러나야 한다는 깨달음 때문입니다.

감정을 안에 숨기는 것, 표현하고자 하는 걸 오히려 꽁꽁 싸서가슴속에 안고 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조용필의 말처럼 노래를 하거나, 또 시를 쓸 때도 지나친 감정 표현은 누르는 게 좋다. 처음부터 가슴이 찢어진다느니, 좋아서 미치겠다느니 하면 거부감부터 생긴다. 글도 그렇다. 최상급이나 너무 꾸민 말은 피하는 게 좋다. 맛있는 음식일수록 간이 적다. 원재료가 안 좋을 때 간을 심하게 한다. 좋은 음식은 원재료 맛을 충분히 살리는 것이다. 감정도 그렇다. 감동이란 강요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담담하게 얘기해도 감동할 얘기면 다 감동하고, 그렇지 않으면 무덤덤한 것이 세상 이치이다.

“일류는 자신은 무심하게 부르지만 듣는 이는 감동한다. 이류는 부르는 이와 듣는 이가 함께 감동한다. 삼류는 부르는 이 혼자 감동한다.” 가수 이승철의 말이다. “독자를 울리려면 필자는 울면 안 된다. 자신이 다 울어 버리면 독자들은 울 여지가 없다. 감정의 과잉보다 절제가 중요하다.” 허영만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