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연중의 발명칼럼] 창조적 모방은 곧 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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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연중의 발명칼럼] 창조적 모방은 곧 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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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연중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특허 법무 대학원. 前 한국발명진흥회 이사. 前 영동대학교 발명특허학과 교수. 現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헐벗고 배가 고파도 남의 물건을 절대로 훔치지 않았던 우리 조상들은 오로지 책 도둑만은 도둑이 아니라며 관대하게 넘어갔다. 배우고자 하는 열망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미덕이라는 것이 우리 조상들의 생각이었고, 이 때문에 책 도둑이 배우기 위한 것이라면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생각은 책 한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워서 가난한 사람들은 배울 수 없었던 시대의 생각이므로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책 도둑도 도둑으로 처벌을 면할 수 없다. 책뿐만 아니라 그 어떠한 것도 남의 것을 훔치면 그것이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도둑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발명해야 하는 발명가는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남의 발명 훔치기에 있어 면책특권을 부여받았다 할 수 있다. 발명 그 자체는 무체재산권으로 물건이 아닌 만큼 남의 발명이라 할지라도 창조적으로 모방하여 ‘좀 더 편리하고 아름다운 제품’을 만들 수 있다면 이 또한 훌륭한 발명인 것이다.

물론 남의 발명, 즉 특허권을 자기 것인 양 그대로 사용해도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몰래 남의 발명을 훔쳐서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것은 명백한 범죄행위다. 그러나 특허권은 독점 권리로 보호받을 수 있는 기간이 한정되어 있고, 그 기간이 지나면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으므로, 남의 발명이라도 합법적으로 사용하면 뜻밖의 수확을 건질 수도 있다.

즉 모방하되 창조적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창조적 모방은 남의 발명을 나의 것으로 ‘좀 더 편리하고 아름답게’ 재탄생 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남의 발명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것을 뜻한다. 남의 발명이라도 ‘좀 더 편리하게’ 하면 실용신안 및 특허출원이 가능하고, ‘좀 더 아름답게’ 하면 디자인출원이 가능함을 잊지 말자. 물론 ‘좀 더 편리하게’하고, ‘좀 더 아름답게’한 부분만 자신의 발명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일본의 대중적인 식사 중의 하나인 돈가스 덮밥이 그 좋은 예다. 돈가스는 서양식 포크 커틀렛, 즉 돼지고기 튀김을 모방한 음식이다. 일본은 이 포크 커틀렛을 단순히 모방하는데 그치지 않고 고유의 덮밥으로 재탄생시켰다. 뜨거운 밥 위에 잘 튀겨진 돈가스를 얹고 육수와 계란 국물을 부어 먹는 돈가스 덮밥은 완전히 일본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 음식은 동서양의 맛을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특이함과 간편함 때문에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서양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일본의 이런 창조적 모방 정신이 경제대국을 만들었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이런 창조적 모방정신은 훌륭한 발명의 기법이기도 하다. 라디오의 접이형 안테나를 그대로 모방해 만든 지시봉도 있다. 이 지시봉은 라디오에서 안테나만을 떼어낸 것처럼 모양이 완전히 똑같지만 전혀 다른 용도로 인기를 끌었다. 접어 넣으면 크기도 작고 볼펜 같은 모양이기 때문에 휴대가 간편하지만 일단 끝을 끄집어내어 늘리면 여의봉처럼 늘어나 지시봉으로는 안성맞춤이었다.

또 샤프연필의 모양을 그대로 흉내 낸 분필케이스나 지우개도 한동안 눈길을 끈 아이디어다. 얇은 막대 지우개를 샤프연필처럼 끼워서 사용하는 샤프지우개는 멋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학생들에게 단연 인기였고, 분필케이스는 하루 종일 분필을 만지는 선생님 사이에서 대인기였다. 분필을 쉽게 빼고 넣을 수 있는 샤프의 특징을 그대로 모방했기 때문에 거둔 성과다.

유럽 최고봉 융프라우를 올라가는 케이블 기차도 마찬가지다. 시계의 톱니바퀴에서 힌트를 얻어 가파른 산을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든 이 기차도 모방에서 얻은 창조물이다.

모방도 어엿한 창조의 기술이자 발명의 기법이다. 남의 아이디어를 훔치는 사이에 자신의 창조력은 자극을 받는다. 썩은 나무 둥치에서 탐스럽고 아름다운 버섯이 피어나듯이 늙고 구태의연한 발명에 새로운 감각을 불어넣고 생명력을 주는 것이 바로 창조적 모방인 것이다.

다른 사람의 발명에 눈독을 들여 보자. 이용할만한 기술이나 모양은 없을까? 단순한 베끼기를 뛰어넘어 새로운 발명을 창출한다는 느낌으로 발명에 도전해보자. 예기치 못했던 곳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힌트를 얻어 새로운 발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