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의 인류문명사칼럼] 고객지향주의로 상권을 장악한 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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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의 인류문명사칼럼] 고객지향주의로 상권을 장악한 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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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 칼럼니스트. KOTRA 밀라노 무역관장. 세종대학교 대우교수. (저서) 유대인 이야기, 세 종교 이야기 등 다수)



유대인은 떠돌이 민족이다. 그들은 설사 정주민족 내에 들어와 살더라도 영원한 이방인이자 아웃라이어다. 아웃라이어란 표본 집단에서 동떨어진 존재를 이야기한다. 소외된 자, 그늘에 가려진 자, 사회에서 매장된 자. 그들이 유대인이었다.

그런데 역사는 이러한 아웃라이어들에게 뜻하지 않은 기회를 준다. 그것도 황금 기회를. 농경사회에서 축출돼 상업에 눈뜨고 뿔뿔이 흩어지게 돼 글로벌한 민족이 된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아니 이것이 역사의 이치다.

뒤집어 보면 유대인은 가장 생산성이 낮은 농업에서 퇴출당해 부가가치가 높은 상업과 교역으로, 그리고 상인집단인 길드에서 퇴출당한 다음에 이를 이겨내기 위해 고객지향주의를 창출했다. 고객지향적인 현대 경영학 이론은 대부분 유대인으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도 유대인이다. 중세에 유대 상인들은 가는 곳마다 상권을 장악했다. 그러자 당시 막강했던 상인조합인 길드로부터 쫓겨났다. 중세 상업은 길드가 정한 원칙을 따르고 있었다. 그것은 ‘정당’하다고 생각되는 정액의 임금과 가격, 공평한 제도의 추구였다.

여기서 말하는 공평한 제도란 합의에 의해 시장에서의 일정 분배율이 결정되고, 이익이 보장되며, 생산 한도가 설정되는 것 같은 제도를 가리킨다.길드로부터 퇴출당한 유대인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길드 내 상인보다 더 좋은 물건을 더 싼 값에 공급하면서도 고객 서비스 수준을 더 좋게 해줘야 했다. 한마디로 모든 게 고객의 니즈에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 유대인은 길드의 제약을 받지 않고 오로지 ‘고객만족’으로 승부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고객을 유일한 법으로 생각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씨앗이 됐다.길드에서 배제된 유대인이 ‘착한’ 가격으로 중세 상업의 기반을 흔들어 놨다. 유대인은 길드가 정한 가격과 이익체계를 해체해버리고 고객 중심의 자유경쟁체제를 도입했다. 그 통에 오히려 막강했던 길드가 와해됐다.

근대 초 독일권의 한자상인들이 유대상인들과 소금 유통권을 갖고 싸우다 와해된 것도 좋은 예다. 한자상인이 암염으로 유럽 북부상권을 장악하고 있을 때 유대상인은 스페인에서 천일염을 들여와 이를 한 번 더 정제해 암염보다 훨씬 싼 값에 공급했다. 당연히 품질 좋고 싼 천일염이 기존 유통을 대체했다. 게다가 유대인은 당시 어음거래를 했는데 한자상인은 현금거래를 고집하다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이로써 유럽의 상권 세력이 바뀌었다.

우리가 유대인 바이어와 거래할 때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거래 초기 단계에서 계약서를 작성할 때 그 내용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우리는 계약을 일의 시작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으나 유대인에게 계약이란 일의 완성을 의미한다. 유대인은 한 번 맺은 약속인 계약은 철저히 이행한다. 유대교의 특징이 계약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계약은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당위다. 그들이 비단 신과의 계약뿐 아니라 상업상의 계약도 중시하는 이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