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소리]천안 거북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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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소리]천안 거북놀이

국민의 소리는 코로나19의 펜더믹 상황에 처한 작금의 시민들의 국난극복의 일환으로 우리 조상들의 수많은 고난과 시련을 극복해 온 경험과 지혜를 찾아 얼과 혼이 깃든 소중한 전통문화예술을 찾아 소개하여 물질의 시대를 지나 마음의 시대에 진입한 작금에 잘남과 못남을 버리고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측은지심을 이끌 수 있는 화합의 일환을 이끌고자 마련한 코너입니다. 

조상들은 거북을 학과 더불어 십장생의 하나로 매우 영적인 존재로 여기고, 거북이 모양의 분장을 하고 풍작과 복을 비는 수단으로 한가위나 정월 대보름에 경기도, 충청도 등 한강 이남의 기호지방을 중심으로 널리 행해졌는데 거북모양의 탈을 쓰고 행해지기 때문에 거북놀이라고 한다.

놀이의 유래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설총고서>라는 문헌에 신라 문무왕 때 15세의 공주가 병이 들었는데 영추대사가 15세 소년들로 하여금 수수잎으로 거북의 탈을 만들어 쓰게 하고 유희하며 집 안팎을 깨끗이 쓸게 하였더니 공주의 병이 나았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여 이것을 거북놀이의 기원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또한 거북놀이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대사 가운데“거북이가 압록강을 건너 백두산을 넘어 이천까지 오느라고 배가 고파서 쓰러졌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 전해진 것이 아닐까 추정하기도 한다.

또 충남 천원지방에서는 고려 8대 현종(1010~1031) 때 나라에 가뭄과 흉년이 계속되어 곳곳마다 도둑들의 행패가 심해지자 현종이 직접 민정을 살피기 위해 각 고을을 순회하던 중 직산현에서 하루를 기거하는데 꿈속에서 신라의 문무왕이 나타나 8월 한가위에 거북을 보낼테니 거북과 더불어 뛰어 놀고 민습을 수습하라고 현몽하여 현종은 이튿날 지형을 두루 살펴보고 입장면 구덕리(龜德里-현재 입장면 신덕리 1구)가 거북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어 이 마을 사람들과 거북놀이를 하였더니 이듬해 벼알이 수수알처럼 풍성하게 여물어 대풍을 이루었기에  이때부터 이 마을에서 매년 추석을 맞이하여 거북놀이를 하였다고 하여, 이곳이 거북놀이의 발생지이며 이 거북놀이가 안과태평(安過太平)을 바라는 의미에서 발생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유래담은 모두 근거가 빈약하고 관련 문헌의 정확한 고중이 없는 점이 한계이다. 그러나 농사를 짓는데 필수적인 비(용왕의 사신으로 거북)를 상징하는 거북을 통해 수확에 대해 감사하고 다음 해 풍년을 기원하는 바램에 의해 만들어진 놀이라 여겨진다.

최근 자료로 무야라마 지준이 지은 <조선의 향토오락 >에는 거북놀이에 관한 조사 보고가 여러 군데 나온다. 기본 방식은 “집으로 만든 거북모양을 뒤집어 쓴 사람과 거북을 끄는 사람이 있어서 이들이 각 집 문전을 방문한다. 방문한 집에 들어가서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놀이를 한다. 그러다가 거북이 주저앉아 움직이지 않으면 집주인이 그 까닭을 묻는다. 배가 고픈데 떡을  먹고 싶다고 하면 주인은 떡과 음식을 내어 대접한다.”는 것이고, 지방으로는 경기도 6곳, 충북 3곳, 충남 5곳, 전남 1곳, 강원도 1곳 등 총 16곳이다. 위의 기록에 따르면 중부지방에서 많이 했으며 당시에도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거북을 만드는 재료로 수숫잎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옥수수 잎, 왕골, 덩굴, 대나무 가지, 볏짚 등을 이용하여 만들기도 한다. 거북이가 다녀간 집은 재앙이 달아나고 복이 온다고 하여 다투어 거북을 맞이하는데 그 형식이 각 지역 모두 비슷하나 몇 지역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경기도 광주지방 거북놀이은 거북이가 자기 집 문 앞길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으매 이것을 본 집주인이 거북몰이에게 그 까닭을 묻는다. 그러면 거북몰이가 배가 고파서 그런다고 대답하면  집주인이 음식을 많이 차려 놓는다. 이 거북놀이는 밤늦게까지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논다. 때로는 음식 대접 외에 쌀, 보리 등 곡물을 약간 내 놓기도 하는데 이때 거둬들인 곡물은 모아 두었다가 마을을 위한 공공사업에 사용한다.

경기도 여주 지방의 거북놀이은 여주군 전역에서 행해졌던 놀이로 추석날에 청소년들이 수숫잎을 따서 한가운데 모습을 지어 마치 지네발과 같이 길게 엮는다. 이것을 몇 개 이어서 멍석처럼  만들고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가서 까불거리며 걸어간다. 그러면 마치 거북이가 걸어가는 것 같다. 그러다가 동네 부자집 마당에 가서 거북이 임자가 뒤에서서 “거북아 거북아 만세 거북아, 잘도 먹고 잘도 놀아라”라고 외치며 풍물을 치면 여기에 맞추어 거북이 춤을 추며 논다. 그러다가 거북이 쓰러지면 거북이가 배가 고파 쓰러졌으니 먹을 것을 갖고 오라 소리치고 이것을 신호로 그 집에서 미리 준비했던 술, 떡, 과일을 내온다. 그러면 여기서 배부르게 먹고 즐기다가 또 다른 집으로 간다. 이렇게 하여 온 동네가 술 풍년, 떡 풍년, 노래풍년이 든다.

충북 음성지방의 거북놀이은 거북이의 등은 수숫잎을 엮어 만들기도 하고 맷방석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머리는 작대기 끝에 박속으로 거북의 얼굴을 만들고 두 개의 귀는 꽃송이를 장식하고 위엄을 주기 위해서 밤송이를 섞어서 만든다. 꼬리는 막대기 끝에 수숫잎을 한 묶음 달아서 만든다. 이렇게 준비가 되면 맷방석 밑으로 청년 두 사람이 들어가 앞 사람은 거북의 머리를 들고, 뒷사람은 꼬리를 들고 거북이걸음을 한다.

용기수를 선두로 하고 가장한 질라재비(길잡이)가 거북이를 이끈다. 그 뒤에 시종이 둘이 따르며 그 뒤를 어릿광대와 농악대가 따른다. 이 대열은 집 대문 앞에 서서“천석 거북이 들어 갑니다. 만석 거북이 들어 갑니다. 문을 열면 만복이 들어오고, 땅을 쓸면 황금이 쏟아져 나오니 이 댁의 문을 활짝 열어 주소서”하며 수문장 굿을 하면 주인은 문을 활짝 열어 준다. 이어 마당에 들어서서 용왕굿과 샘굿(우물굿)을 한다. 이어 마당을 돌며 놀다가 거북이 쓰러진다. 이때 질라재비는 “이 거북이 동해바다를 건너 이 산골짜기 오느라고 과로해서 병이 났나보오” 운운하고 종을 시켜 의사를 불러오게 한다. 의사는 병이 너무 중태라며 손을 떼려고 할 때 질라재비와의 해학적인 문답이 오고 간다. 결국 많은 음식이 나오도록 유도해서 접대를 받은 다음 다시 덕담을 늘어 놓으며 거북놀이를 계속한다. 그러다가 마당을 한 바퀴 돌아 문턱에서 큰절을 하고 조왕굿(부엌 부뚜막)을 하는데 보통 “검은 솥에 화식을 익혀 먹을 때 아무거침 없이 수복다남 부귀영화 내려 주소서”라는 덕담을 하고 이어 텃굿(터주굿)을 하는데 이때는 “컹컹 짓는 소리 이 근방 만전복록 이댁으로 무럭무럭 떠들어오게 하여 주소서”라는 덕담을 늘어 놓는다.

이 같은 놀이는 한집에서 30~1시간 정도 진행되고 다음 집으로 간다. 경기도 광주, 이천과 충청도 청주, 음성, 충주, 예산, 서산과 전라남도 해남에서는 어린이들이 이 놀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어른과 청년들도 했지만 아이들이 명절을 맞이하여 거북놀이를 함으로써 명절을 즐겁게 보낼 뿐 아니라 동네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기 자리를 찾아나가는 것이다. 특히 준비과정부터 진행과정이 모두 집단적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을 기르는데 효과적이다.